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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삶으로

📚 50대 후반에 다시 읽은 《데미안》나는 아직도 나의 세계를 깨고 나오는 중이다

by 하루한쪽 2026. 7. 19.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중학생 때 《데미안》을 한 번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이 책의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이런 책 한 권쯤 읽어야 조금은 똑똑해 보일 것 같았다.

 

지식인이 된 듯한 기분을 내고 싶어 책장을 넘겼을 뿐, 싱클레어가 왜 그렇게 방황하고 흔들리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50대 후반이 된 지금, 다시 《데미안》을 읽었다.

같은 책인데도 예전과는 전혀 다른 책처럼 다가왔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책 속의 싱클레어보다 오히려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50대 후반에 다시 읽은 데미안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책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은 이것이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나는 아직도 나의 세계를 깨고 나오는 중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지금의 나를 생각했다.

누구나 현재의 자신에게 완전히 만족하며 살아가지는 않는 것 같다.
나 역시 지금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어 ‘하루한쪽’이라는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을 준비하고 있다.

혼자 마음속으로만 결심하면 또 미루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하듯 시작해보려 한다.

매일 책 한쪽을 읽고, 마음에 남은 생각을 기록하고, 영상으로 이야기하는 일.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은 시작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내가 머물러 있던 세계의 껍질을 깨는 일인지도 모른다.

《데미안》의 이 문장은 마치 현재의 내 모습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익숙하게 살아온 나를 깨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온 시간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나는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살았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 좋은 사람으로 보일지,
무엇을 해야 실패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지를 생각했다.

그렇게 살아온 이유를 오랫동안 타인에게서 찾았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오로지 다른 사람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한 데에는 내 책임도 있었다.

나답게 살기 위해 몸부림쳐보지 않았던 것.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진지하게 묻지 않았던 것.
불편하더라도 내 생각과 감정을 끝까지 따라가 보지 않았던 것.

그 사실이 오히려 더 후회스럽게 다가왔다.

왜 나는 진작 싱클레어처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찾기 위해 혼자서라도 몸부림쳐보지 않았을까.

생각의 사치일까

솔직히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도 했다.

‘생각의 사치가 아닐까?’
‘굳이 인생을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할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바쁜데,
자신의 내면과 세계를 찾기 위해 이토록 흔들리고 고뇌해야 할까 싶었다.

하지만 책장을 계속 넘길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남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별다른 질문 없이 사는 것보다,
아프고 힘들더라도 자신의 세계를 찾아가는 몸부림이 더 현명한 삶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하다는 이유로 알 속에 계속 머문다면,
우리는 한 번도 진짜 자신의 모습으로 태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왜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까

책을 다 읽고 밑줄 친 문장을 다시 바라보았다.

내가 왜 이곳에 밑줄을 그었을까.

아마도 지금 내가 그러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고,
남이 정해준 모습이 아니라 나의 모습으로 살아보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이유

두 번째로 마음에 남은 문장은 조금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서 바로 우리 자신 안에 들어 있는 어떤 것을 보고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

 

이 문장을 읽으며 내가 미워했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혹시 내가 그 사람에게서 싫어했던 모습은,
사실 내 안에도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이 아니었을까.

타인의 이기심을 미워했지만 내 안에도 이기적인 마음이 있었고,
타인의 허세를 불편해했지만 나 역시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향한 미움은 그 사람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바라보지 못한 내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일 수도 있다.

답을 계속 바깥에서만 찾으려 하지 말고,
내 안에서 먼저 찾아보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오늘의 하루한쪽

50대 후반에 다시 만난 《데미안》은
나에게 늦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직 깨뜨리지 못한 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그 안에서 나오기 위해 움직여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직 내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무엇을 원하는지도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그래도 ‘하루한쪽’을 시작하는 이 작은 행동이
내가 오래 머물렀던 세계에 처음 내는 금이 될 수 있다고 믿어보려 한다.

나는 아직도 나의 세계를 깨고 나오는 중이다

🌱 오늘의 하루한쪽 

늦었다고 생각되는 지금도
우리는 자신을 가두고 있던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